어떤 선거든 낙선자가 기억되기는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당선자 중심이다. 지난 총선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이들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국회에 입성,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으나 이들과 경쟁했다가 떨어진 인사들의 근황은 알 길이 없다. 주민들도 그리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정치 9단’이라 불리는 국회의원 박지원도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떨어지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라고까지 했을까.
그런데 얼마 전부터 흥미로운 일이 생기고 있다. 여러 곳에서 강원도 출신 총선 낙선자 한 사람의 안부를 물어온다. 일부 지역 인사들과 출향인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다른 지역 기자들까지도 그의 근황을 궁금해한다. 분당에서 떨어진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얘기다. 묻는 내용도 비슷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로 시작해 “앞으로 어떻게 한대요?”로 이어진다.
다행히(?) 총선 이후 만나기도 하고 가끔 전화도 주고받으면서 그의 동향은 알고 있던 터라 이분들에게 기본적인 사실은 설명할 수 있었다.
일단 총선 직후 상황부터 정리하자면 그는 한동안 낙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당갑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던 탓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선거 직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앞서 있었고, 특히 국민의힘 내부에서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조차 이기는 결과였다. 투표 당일 선거운동 기간 안 보이던 어르신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박빙의 승리를 예측했었다.
패배 후 한 달여 동안 선거 뒷정리를 마친 그는 더불어민주당 분당갑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측근들과 논의 끝에 분당을 떠나지 않고 지역구 관리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주말에는 분당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한 달에 한 번씩 당원 및 지역민들과 현안 토론을 시작했다.
실제 이 전 지사는 지난 7월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인 맹성규 의원을 초청, 주민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분당 재건축과 지하철 연장사업의 미래’라는 주제로 주민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에 앞서 6월에는 ‘재건축 세금제도 정책토론회’를 열었고 이번 주초인 2일에도 학교 및 경로당의 급식단가 현실화를 주제로 9월 토론회를 가졌다. 분당에서는 낙선 후 떠날 줄 알았던 이광재가 국회의원보다 더 꼼꼼하게 현안을 챙기자,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다음번에 출마하면 꼭 찍겠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달부터는 명지대에서 강의도 시작했다. 그래서 평일에는 대학에 마련된 연구실에서 강의 준비와 미뤄뒀던 공부를 하고 있다. 틈틈이 친분있는 정치인들과 만나면서 정세도 파악중이다. 여기까지가 그의 근황이다.
그러나 정작 이 전 지사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그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답하기가 어려웠다. 아직까지 본인의 고민이 깊다. 무엇보다 지금은 당장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정치적 변화 가능성이 너무 커서다.
당장 내년 상반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도 변수 중 하나이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수도권이나 세종 등에서 빈자리가 발생한다면 이 전 지사가 거론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2026년 지방선거도 그렇다.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치러지는 지선에서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민주당으로서는 경쟁력 있는 이광재를 다시 설득해 강원도지사 후보로 내보낸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가정은 그야말로 ‘가정’에 불과하다. 그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총선 당시 당내에서 이 전 지사에 대한 견제 분위기가 강해 선거를 불과 한 달여 남기고 어렵게 공천이 결정됐던 사실을 감안하면, 완벽하게 이재명 대표 체제로 구축된 당이 그에게 또다시 출마의 기회를 줄 지는 미지수다. 이광재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기다림’이 필요한 때다. 스스로 공간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몸을 낮추고 머지않아 다가올 시기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대신 그 기다림은 ‘준비된 기다림’이어야 한다. 언제든 뛰어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이 전 지사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도 전해야겠다. 당분간 그가 보이지 않더라도 염려하지 말라고.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