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라떼는 말이야]대학축제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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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강원대 축제모습. 미래광장에서 열린 학내 탈출동아리 공연모습. 강원일보DB

대학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대학축제’는 낭만(浪漫)이라는 단어와 등치관계에 있다.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것이, ‘젊은 시절의 낭만’이라는 표현처럼 낭만과 관련해 어울리는 몇 안되는 표현 가운데 현실세계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것이니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예전과는 달라진 대학축제의 풍경들을 보면서 서슴없이 “대학 캠퍼스에서 낭만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럼 대학축제에 있어서 낭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재미있는 것은 50여년 전인 1970년대 초 어느 신문에 ‘낭만없는 5월의 대학가 자기비판’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는 점이다. 기원 전부터 “요즘 애들은 철이 없다”고 한 기록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는 것 처럼 동서고금, 시대를 막론하고 낭만이 사라진 세태를 한탄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젊은 시절 겪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좋았던 기억들이 켜켜이 쌓인 결과가 낭만이라고 한다면 기성세대는, 혹은 미래의 기성세대들은 끊임없이 ‘낭만상실’을 외칠수 밖에 없다. 그러니 달리 생각하면 대학축제가 열리는 대학가 오늘의 모습도 수십 년이 흐른 후에 뒤돌아 보면 또다른 낭만의 시절로 기억될 수 있겠다 싶다. 아무튼 MZ세대의 대학문화, 대학축제 트렌드(trend)를 두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꼰대력’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1978년 춘천간호전문대 학생들이 축제를 맞아 포크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강원일보DB

우리나라에서 대학축제는 1956년 10월 신흥대학교(현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대학제(大學祭)’가 그 시초라고 한다. 당시 사흘간 진행된 대학제 행사는 연극과 음악, 체육, 모의재판과 각 단과대학별 가장행렬 등으로 구성돼 있어 현재의 대학축제 모습과 비교하면 소박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도 ‘동민 위안의 밤’ 행사까지 주요 프로그램 안에 포함시켰으니, 지역민까지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지역축제, 동네잔치로서의 역할도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변변한 볼거리, 즐길거리 하나 없던 시절에 대학축제는 든든한 지역문화의 한 축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다. 동국대의 경우 1977년 제71주년 기념 동국축전을 개최하면서 강원도 벽지 어린이 40여명을 초청하는가 하면 양로원 노인들을 찾아가 경로잔치를 벌이기까지 했으니 대학축제가 감당해야 할 영역은 점점 넓어지게 된다. 이후 대학축제는 공연과 전시를 선보이는 예술제와 각종 강연, 심포지엄 등이 진행된 학술제, 탈춤과 널뛰기 등 민속행사로 꾸며진 민속제, 체육대회 등 다양한 가짓수의 분야별 프로그램으로 세분화 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다양화 흐름은 대학축제가 ‘놀자판’ 만으로 흐르면 안된다는 경계의 목소리에서 나온 것이기는 했지만, 공개된 공간에서 합법적(?)으로 이성을 만날 수 있었던 ‘쌍쌍파티’가 대학축제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을 놓고 보면 대학축제를 바라보는 온도차가 서로 너무도 달랐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83년 한림대 축제에서 두 여학생이 닭싸움을 하고 있다. 강원일보 DB

‘쌍쌍파티’는 대학축제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 프로그램으로 대학축제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불리곤 했다. 여자 또는 남자친구가 없는 학생들은 새롭게 파트너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오빠나 여동생,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초청해서라도 참여하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그런 ‘쌍쌍파티’가 없어 진다는 소식은 신문지상에 실리기까지 했다. 이화여대가 쌍쌍파티를 없앤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최인호씨가 이를 아쉬워 하며 탐방기(축제는 대화의 광장·경향신문 1977년 9월21일 )를 쓴 것. 면학 분위기를 흐리게 한다는 것을 폐지의 이유로 들었지만, 과연 축제 프로그램을 학업의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설왕설래가 많았다. 쌍쌍파티 못지않게 여왕대관식도 유행했다. 이른바 ‘메이 퀸’을 뽑는 행사가 그 것인데, 이 역시도 수없는 찬반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사회적으로 이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1970년 말에 이르러 완전히 퇴출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부침이 이어지던 대학축제는 1980년대 전후로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는 학생운동 이슈와 결합되면서 대학축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갈리기도 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특이하게도 대학축제장이 이동통신사들이 대거 참여해 대학생을 타킷으로 삐삐와 씨티폰, 휴대폰에 대한 판촉전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1989년 강원대 축제에서 학생들이 컴퓨터로 사진을 인화해 주고 있다. 강원일보DB

최근에는 인기가수 섭외에 따라 축제의 성패가 갈리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축제를 준비하는 총학생회 입장에서는 중간평가 성격을 갖고 있는데다 섭외 성적에 따라 대학축제 전체의 흥행이 결판나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를 보고 누군가는 대학축제에 낭만은 사라지고 연예인만 남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학축제의 본령은 무엇일까. 대학축제는 “다함께 크게 어울려 화합한다”는 뜻의 ‘대동제’로 불리기도 한다. 놀이문화, 술문화, 학생운동문화가 녹아든 것이 그동안의 대학축제라고 한다면 과연 오늘날의 대학축제는 어떤 모습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 모습 또한 낭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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