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호·가시연습지 습지보호지역은 동해안 대표 석호, 철새도래지이자 멸종위기종인 가시연이 서식하는 강릉시 우수생태계다.
특히 경포호는 명승(제108호), 도립공원, 야생생물보호구역 등 다양한 형태의 보호지역으로도 지정·관리되고 있어 생태적, 문화적 중요성이 공인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강릉시에서는 경포호에 대한 수질 개선을 위해 수중 폭기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중 폭기 시설’이란 일반적으로 호수의 수중에 적정 규모의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오염물질 유입에 의한 부영양화 저감 등의 효과를 목적으로 설치하는 시설이다. 그런데 폭기 시설 설치를 통해 수질을 개선하겠다고 하는 순수한 계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의문점이 생긴다. 첫째, 폭기 시설 설치 시 과연 실효성은 있는가? 시급한 현안이라고는 하지만 보호지역에 대한 대형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수질 정밀 조사자료, 간접적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분석 등 해수화된 경포호를 대상으로 반드시 검토돼야 할 과학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둘째, 수질 정화를 위해 설치한다는 폭기 시설 중 대규모 분수도 계획돼 있는데, 생태계에 주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검토된 것인가? 단편적으로라도 겨울 철새의 월동 행태에 분명한 영향을 줄 것이며, 시민들에게 공개한 분수 설치 위치는 잠수성, 수면성 오리류들의 주요 먹이터이자 휴식 공간이다. 그렇다면 실효성과 생태계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입되는 250억원의 예산은 수질 정화와 관광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는 강릉시의 의지를 통해 어느 정도 추측은 된다. 보호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서 관광 활성화를 위한 분수 설치가 전면에 나오기에는 다소 무리라고 판단했겠으나, 전국적으로 사례가 없는 보호지역 수체를 이용한 단편적 관광 효과를 거두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수질 정화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상지가 보호지역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적절한 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일부 도지사가 행위 승인 권한을 갖고 있는 보호지역 유형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단순 수질 개선 사업으로 포장된 듯한 분수의 설치를 과연 적절한 것으로 판단하는지 이제는 강원자치도에도 묻고 싶다. 다양한 습지 정책을 다뤄 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불과 몇 년 전, 강릉시가 경포호·가시연습지를 국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승격시키고 람사르습지 등록과 더불어 람사르 습지도시로서의 국제적 브랜드를 갖고자 했던 노력이 멈췄다는 점이 아쉬운 순간이다. 거울처럼 맑은 경포호에 이 사업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비추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