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고려인삼은 강원인삼이다’라는 명제는 사실이다. 강화, 금산, 풍기 등 각 지역이 저마다 고려인삼, 개성인삼의 관계성을 강조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남한 지역에서 고려인삼의 주 산출지는 강원특별자치도임을 밝혀냈다.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 인삼은 오직 동북계(東北界)에서만 산출되고, 다른 지역은 드문드문 산출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몽골의 5대 대칸이었던 쿠빌라이 칸이 고려인삼의 조공을 무자비하게 진행하자 당시 고려 충렬왕이 쿠빌라이 칸에게 표문을 보냈다. 『고려사』 기록이다.
“또 금년 4월에 소방의 바둑 고수 조윤통이 성지를 받들어 인삼을 채굴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인삼은 오직 동북계(東北界)에서만 산출되고 다른 지역에서는 드문드문 있는데도 조윤통이 함부로 각 도의 주현들이 산지에서 채굴하여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바라건대 생산지에서만 시기를 맞추어 채취하여 바치도록 하시고, 조윤통이 함부로 캐내어서 씨를 말리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又今年四月, 小邦碁手曹允通, 奉聖旨, 採堀人參. 切照人參, 唯産於東北界, 其餘地面, 罕有之, 允通擅令各道州縣, 就産處採堀輸納. 臣請隨所産處, 趂時採納, 乞令允通, 勿得擅便作耗.”
동북계는 고려시대 지방행정조직인 오도양계 중 양계이다. 동계는 대체로 함경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이, 북계는 평안도 지역이 해당된다. 동계와 북계 중 남한에 해당하는 지역은 강릉, 정선, 고성, 양양, 삼척, 동해, 태백, 영월, 평창, 속초, 울진이다. 현재 경상북도에 해당하는 울진을 제외하면 모두 강원특별자치도다. 울진도 조선시대에는 강원도였다. 따라서 현재 남한에서 고려인삼의 주 산출지가 강원특별자치도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고려사』 기록이다. 고려인삼은 강원인삼이었다.
고려인삼의 적자인 강원인삼의 맥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조선시대였던 14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100년 단위로 발행된 전국 지리지〔『세종실록 지리지』(1454),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동국여지지』(1656), 『여지도서』(1757~1765), 『대동지지』(1862~1866)〕의 특산물 항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500년 동안 한 번도 빠짐 없이 인삼이 특산물이었던 지역은 남북한 합쳐 22개 지역이다. 그중 남한은 13개 지역(원주, 춘천, 영월, 정선, 화천, 홍천, 횡성, 양구, 인제, 고성, 강릉, 삼척, 양양)뿐이다. 모두 강원특별자치도에 속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 속초는 양양에, 동해는 강릉, 삼척에, 태백은 삼척에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철원과 평창을 제외한 강원특별자치도만이 남한에서 조선시대 500년 동안 연속적으로 특산물로 인삼이 산출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강원인삼의 맥은 1950년 한국전쟁 직전까지 이어졌다, 1940년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강원도지』의 각 지역 특산물을 살펴보면 강원특별자치도 전 지역의 특산물로 인삼이 기록되어 있다. 3년간의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면서 다년생 작물인 인삼은 맥이 잠시 끊기게 되지만 1970년 10월 6일 강원특별자치도가 홍삼재배지역으로 공고되면서 다시 그 명맥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인삼의 역사에서 변방으로 여겨졌던 강원인삼이지만 이제 당당히 ‘고려인삼의 적자(適者)’임을 내세우고, 조선시대 500년 동안에도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강원특별자치도만이 인삼이 끊임없이 산출되었던 역사적 정통성을 품에 안고, 강원인삼이 강원특별자치도의 새로운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