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일본 카가와현 다카마쓰 시청에서 5분 정도 걷자 길이 470m의 아케이드 상점가가 나타났다.
다카마쓰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마루가메마치 상점가다. 거리는 평일 낮 시간임에도 시민들과 직장인, 학생, 관광객들로 붐볐다.
활기 넘치는 상점가에는 200여개 점포가 몰려있다. 종업원만 1,300여명에 달할 정도다.
마루가메마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그랜드돔. 아파트 10층 높이의 거대한 유리돔 아래에는 루이뷔통, 코치, 롤렉스 등 명품과 주얼리 브랜드인 티파니 등 고급 브랜드관이 자리잡고 있다. 마루가메마치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아마 이곳이 백화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마루가메마치는 1587년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전통시장이다. 마루가메마치는 437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거리다. 구도심의 슬럼화, 공동화는 한국은 물론 일본, 전 세계 도시들이 모두 갖고 있는 고민이다.
인구 41만명의 중소도시 다카마쓰의 전통시장이 여전히 핫플레이스인 비결은 무엇일까.
■40년째 재개발, 끊임없이 진화하는 전통시장=1988년, 마루가메마치 상점가 탄생 400주년을 맞은 상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시 일본은 버블(거품)경제로 인한 비정상적인 고도성장의 끝자락에 있었고, 상인들은 직감적으로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에 상인들은 조합을 결성했다. 1990년대 들어 끝내 버블은 꺼지고 일본 경제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까지 겹치며 상점가는 급격히 쇠퇴했다. 2000년대 초 마루가메마치 상점가의 빈 점포의 비중은 18%까지 치솟았다. 상점 5곳 중 1곳이 문을 닫으며 400년 이래 최대 위기에 내몰렸다. 한 자리에서 대를 이어 장사를 해온 상인들은 상점가를 포기할 수 없었다. 2001년 상인조합은 주식회사로 모습을 바꿨고 카가와현과 다카마쓰시는 중앙정부로부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국비를 확보하면서 69억엔(650억원)의 막대한 재개발 사업비가 투입됐다. 2006년 지금도 상점가 최고 인기 공간이자 랜드마크인 그랜드돔이 완성됐다.
2007년에는 푸드코트 재개발이 시작됐고 2010년에는 152억엔(1,440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초대형 시장 재개발이 시작됐다. 현재 마루가메마치 상점가의 입구에 10층 규모의 대형 주상복합 빌딩을 세웠다. 5층 이상은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고 병원 등 각종 편의시설도 들어서 상점가가 항상 불을 밝히고 끊임없이 유동인구가 발생하도록 설계했다.
후루카오 코조 마루가메마치 상점가 진흥조합 이사장은 “마루가메마치 상점가의 재개발은 아직 50% 수준으로 다음 단계의 재 상인조합의 설명이다. 설명했다.
■하루 9만명 몰리는 전통시장=재개발이 막 끝난 2006년 주말 기준 다카마쓰 중심가의 일일 평균 유동인구는 8만276명이었다. 하지만 2023년 기준 주말 유동인구는 9만1,581명으로 14%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다카마쓰의 인구가 2만명 이상 줄었음에도 도심은 오히려 활기를 띄고 있다.
마루가메마치는 언뜻 우리나라의 아케이드형 전통 시장과 유사한 것 같지만 쇼핑몰처럼 하나의 건물로 통일돼 세련된 느낌을 준다. 한국을 비롯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마트, 분위기 있는 카페와 디저트 가게, 유행을 앞서나가는 옷가게와 기념품점, 그리고 명품매장까지 한데 모여있어 시장 내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정도다. 돔 인근에는 일본 최초, 최대 백화점 브랜드인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이 있었다. 마루가메마치 상점가가 재개발을 통해 프리미엄 쇼핑몰을 연상케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백화점과 상점가가 자연스럽게 연결돼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이같은 마루가메마치 상점가의 재개발 성공 스토리는 일본 전역에 알려져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타 지자체 공무원, 상인들도 몰려들고 있다.
중심가가 활기를 띄며 다카마쓰 일본 내에서도 젊은 지자체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30% 가량이지만 다카마쓰는 28%로 전국 대비 낮은 편이다.
타카하시 준 다카마쓰 시청 도시계획과장은 “다카마쓰의 인구가 조금씩 줄고 있지만 전국의 평균적인 인구 추이에 비해서는 굉장히 낮다”며 “마루가메마치 상점가 등을 중심으로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컴팩트시티를 조성해 젊은 층 유입 인구가 꽤 있다”고 강조했다.
■모든 것은 상인들이 직접 결정=“행정기관의 잔소리는 그만, 예산만 확보해달라.” 마루가메마치 상점가 상인들이 재개발을 담당하는 타카하시 준 다카마쓰 시청 도시계획과장에게 우스개소리로 가장 자주 하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농담이 아니다. 2001년 이후 마루가메마치 상점가 재개발에 투입된 비용은 총 287억엔(2,700억원)에 달한다. 비용의 3분의1은 중앙정부 국비, 나머지는 카가와현과 다카마쓰시에서 투자했다.
다카마쓰시는 막대한 국비를 따왔고 스스로도 많은 돈을 냈지만 간섭을 최소화하고 운영은 상점가 조합에 모두 맡기고 있다. 대를 이어 장사를 해온 상점가 상인들이 상가와 지역을 살리는데 무한한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스스로 먼저 변화를 생각해낸 상인들은 조합을 통해 상점가 운영을 위한 자회사를 만들고 상가 전체를 리모델링 했다. 찔끔찔끔 재개발이 아닌 상인들의 합의와 동의를 통한 통일된 컨셉의 대규모 재개발은 마루가메마치 상점가 상공의 가장 큰 비결이었다.
상점가에 건물과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산에 대한 운영권을 모두 상인조합에 넘겼다. 소유권은 여전히 유지하지만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셈이다. 다만 이들은 상점가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 부분 배당 받는다. 소유와 운영을 분리한 아이디어는 주민, 상인들을 공동체로 묶었다.
후루카오 코조 마루가메마치 상점가 진흥조합 이사장은 “상점가 부동산 소유주들의 결단력과 협업, 상생하겠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지역 언론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