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 쳇바퀴 같은 희생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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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정치부 차장

카카오의 원산은 멕시코다. 중앙아메리카 사람들이 카카오를 달인 음료를 카카우아틀(cacahuatl)로 부르던 것이 어원이 됐다.

카카오는 중앙아메리카 문명에서 화폐로도 이용됐는데 카카오 콩 100개당 노예 1명의 가치였다고 한다. 원재료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고가였던 셈이다.

1521년 오늘날 멕시코에 존재했던 아즈텍 문명이 스페인 보병 500명에 의해 멸망한다. 당시 스페인은 카카오를 본국으로 갖고 돌아와 바닐라, 설탕 등을 넣어 가공했다. 우리가 즐겨먹는 초콜렛이다. 당시 초콜렛은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 전역에서 대유행했다. 스페인은 멕시코에서 난 카카오를 백여년 간 독점하며 큰 돈을 벌었다. 카카오 재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멕시코의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 농사에 매달렸지만 원재료만 만들어 낼 뿐 초콜렛 유행으로 인한 이익은 거의 없었다.

세계사 책에서 접한 수백년 전 대항해시대의 일이지만 요즘 들어 자꾸 기시감이 든다.

정부는 최근 양구 수입천에 1억톤의 규모의 신규댐을 건설하고 화천댐의 용수를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하겠다고 밝혀 지역의 큰 반발을 샀다.

1973년 소양강댐 건설 이후 영서 북부 지역은 많은 규제를 감내하며 살아왔다. 수도권의 상류인 탓에 수질을 깨끗하게 보전 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이로인해 화천과 양구 등은 떡, 빵, 한과공장을 짓는 것조차 정부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반세기 넘도록 많은 영서 북부 주민들이 수도권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데 매달렸지만 이익은 거의 없었다. 묵묵히 감내해 온 세월이 50년이다. 강원 주민들의 50년 희생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이 이뤄졌고 수도권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남겼다.

마치 멕시코 주민이 피땀으로 재배한 카카오를 독점한 스페인이 유럽에서 큰 이익을 거둔 것처럼 말이다.

화천 주민들은 “정부는 화천댐 용수로 이득을 보는 특정 지역이나 기업을 위해 화천군민들의 피해가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는지, 무조건 피해를 보는 것이 합당한지 답변하라”고 외쳤다. 수십년간 쳇바퀴 돌 듯 당연스럽게 반복됐던 일이라 정부도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강원 남부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져 왔다.

9월6일 태백에서는 87년간 국내 최대 규모였던 장성광업소의 폐광식이 열린다. 태백의 수천미터 지하막장에서 광부들이 캐낸 석탄은 전국 곳곳의 공장과 가정에서 발전과 난방에 쓰였다. 석탄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근간이 된 구국의 에너지였다. 하지만 정작 태백을 비롯한 강원 남부지역은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인해 실업의 공포와 지역소멸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글을 써내려 갈수록 억울함만 커져만 간다. 하지만 역사는 냉혹하고 그럴 수록 억울함은 공허해진다.

결국 원재료만 생산해서는 불평등과 손해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멕시코는 여전히 외부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갖고있다. 스페인 대신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스스로 고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일. 강원특별자치도가 쳇바퀴를 돌 듯이 끊임없이 돌아오는 희생과 강요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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