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언대]개(犬)같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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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현 전 춘천시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장

대한민국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5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심지어 유아용 유모차보다 강아지용 개모차가 더 많이 판매됐다는 뉴스가 있을 정도다. 개들 세상, 개판이 됐다. 여기서 개판의 사전적 의미를 언급하면 우리가 비속어로 알고 있는 개판은 원래 씨름에서 유래된 말로 ‘개판’의 개는 멍멍이 개(犬)가 아니라 고칠 개(改)다. 씨름 경기 도중에 쌍방이 같이 넘어지면 서로 자기편이 이겼다고 옥신각신하며 아수라장이 되는 것에서 유래된 말로서 이 경우 경기를 새로 하라는 뜻으로 개(改)판이라 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제는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 주종관계에서 친구와 같은 수평적 관계가 됐다. 그 인식의 전환은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의 용어변화에서도 알 수 있다. 정부 정책에는 그대로 반영돼 동물 보호와 복지를 강화하면서 동물 학대의 처벌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반려동물 입장을 허용하는 장소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제 야외 외출 시 배변 봉투를 지참해 반려동물의 분변을 수거 처리하는 것도 당연한 에티켓이 됐다.

필자가 언급하고 있는 개는 우리 인간과 오래전부터 관계를 맺어온 친숙한 동물이다. 세계 도처에서 개의 화석이 인간의 뼈와 같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 한반도의 개 양육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 무덤에서 개의 뼈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인들이 개를 기르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고양이 또한 인간들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고양이를 길들인 것은 아마도 고양이가 설치류로부터 곡창을 지켜준다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고양이 전래는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 경전 목판을 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와 고양이는 사람들의 보호 속에 호강을 이어가고 있다.

옛말에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개의 삶이 인간의 삶보다 낫다는 것이며 실제로 인간은 삶의 현장에서 먹고 살려고 애쓰는데 아무 일도 안 하고 돌아다니는 개의 삶이 자신들의 삶보다 낫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속담이고 어찌 인간의 삶을 짐승에 비교하겠는가. 개와 고양이가 대우받는 세상임은 틀림없다. 빈곤층이 일 년간 쓰는 돈보다 개 한 마리에 쓰이는 돈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어떤 나라는 보험제도와 주인의 유산 상속까지 받는 예도 있다. 가만히만 있어도 이뻐해 주고, 밥도 주고, 운동도 시켜주는 데다 중병이면 거금 들여 수술까지 해서 생명을 지켜주니 말이다. 부모가 병들어 수발이 힘들면 요양원에 보내지만, 개와 고양이는 요양원이 없다. 죽을 때까지 집에서 요양받다 생을 마감한다. 죽으면 사후처리는 정성껏 수의를 입혀, 염습, 임관을 거쳐 화장에 봉안까지 하는 세상이다. 이 비용 또한 적지 않다. 반려동물로 정들었기에 행하는 의식이겠지만 수술비가 없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옛 선조들은 요즈음 같은 삼복 때면 보신탕이라는 이름으로 식용했다. 그리고 개는 일을 안 한다는 생각도 옳지 않다. 개도 인간사회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동물이다. 눈 썰매견, 경찰견, 군견 등 자기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인간으로부터 반대급부를 받는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가 됐다. 미물이지만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과 융화돼 살아가는 세상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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